- Koo Bohn-chang
 
Kim Ho-deuk
 2018. 3. 26 - 2018. 4. 21

산 산 물 물



전시 제목이 곧 내용 그 자체다. 작가 김호득의 신작이 공개된 이번 전시는 그가 지금껏 치렀던 모든 전시의 성과를 일렬로 죽 세워놓고 볼 때 꼭대기 즈음에 놓을만한지 자부할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대답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는 밝혀두어야 되겠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각 공간에 채울 주제를 정했고, 그 강약의 세기를 조정했다. 그는 또 공간 환경을 연출했고, 심지어 이 도록 디자인의 큰 틀을 잡았다. 전시 제목을 제안한 것도 본인이다. 선생은 마치 독주자로 관현악 협주가 벌어지는 무대 위에서 본인의 악기를 연주하면서 지휘까지 펼치는 힘을 발휘했다. 나는 지금 그저 그의 분발 앞에 차분한 관찰자의 자격을 스스로 매기고서 앉아있을 뿐이다.

이 전시는 외관상 분명한 차이가 있는 세 개의 작업으로 나누어진다. 관객은 1층 공간부터 계단을 오르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거꾸로 위로부터 내려와도 별 상관없다. 층마다 마련된 각각의 공간은 그 안에 배치된 작고 복잡한 구조를 별도로 치든 말든 저마다 주어진 목표를 드러낸다. 물론 예전에 작가 김호득의 전시가 이런 식으로 시도됐던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규모가 컸던 대신 단 몇 작업의 품목으로 선명히 드러내는 일이 흔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산 산 물 물>이라는 이 전시의 표제는 작가가 전통적인 산수화를 동시대 미술에 끌어들여 온 인식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여기 있는 거의 모든 작품들은 제목처럼 험한 산세 속의 봉우리와 능선과 계곡과 폭포와 물길의 변주다.

맨 아래층에는 작가 김호득의 회화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수묵화 작품이 있다. 광목 천위에 꿈틀대는 붓이 지나간 자국은 마치 검객이 휘두른 칼의 궤적처럼, 단 한 번의 획으로 화폭을 가른다. 그것은 결코 즉흥성에 기댈 수 없고, 그렇다고 면밀히 계산된 과정의 결과도 아니다. 우연과 필연이 겹쳐져서 드러내는 이 수묵의 경지는 선생이 아무리 고양된 예술적 성취자라 할지라도 한 개인이 독점할 권리는 없다. 또한 본 전시가 이 준거점에만 집중할 시에 형식적 유사성을 가진 수많은 작가들의 전시가 빠져서 허우대는 관념의 구덩이를 선생이 비켜가라는 법도 없다. 현상학적 철학으로 병치된 사유도 그 유행과 같았던 시절이 지나가면 한물 간 유사(quasi)과학이 되기에 딱 좋다. 나는 그런 과학적 인식으로 가장된 평론의 과잉담론으로부터 선생을 지키는 말단 경호원 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다행인 것은, 이 신작들이 기본적인 율격을 지키면서 과장되지 않은 채 한 폭씩 완성되어간 흔적의 보고서라는 사실이다.

가운데 층 전시 공간에는 아주 커다란 벼루가 먹물을 일렁이며 완성된 인스톨레이션 작품<흔들림-문득>이 있다. 그렇다. 이미 그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수조 설치작업이다. 지금 나는 ‘완성’이란 말을 썼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그것은 영원한 미완으로 남는다. 또 작품이 놓이는 곳에 따라 해석은 다른 맥락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 자체를 문방사우의 몇 가지 것들로 재현한 상징물이라고 봐도 상관없다. 아니면 시커먼 암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 노력과 돈과 시간과 공간을 기리는 추모 조형물로 보면 그 아이러니는 도리어 은근한 해학마저 품는다. 이번 전시가 열리는 곳은 작품을 사고파는 화랑이다. 여기서 거래할 수 없는 작업을 갤러리 전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곳을 통째로 할애한 우리의 결정은 뭔가. 한쪽 벽면으로부터 비치는 조명은 작품을 가로질러 반대편 비대칭으로 분할된 벽면을 스크린 삼아 매혹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만들어 본 거다. 이 거대한 설치 구조물이 실험과 파격의 가치에 의해 처음 모색한 의도는 전통의 변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루하고 뻔한 장르적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작품의 의도 자체가 작가만의 또 다른 습속이 되어가는 과정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원전 악보로부터 떨어진 즉흥적인 발상과 숙련이 그대로 굳어져버린 카덴차처럼, 이 작품은 김호득이 보여주고자 하는 미적 세계의 엄숙한 순간을 조금씩 바꿔가며 되풀이한다. 남들이야 뭐라 하던지 간에, 나는 그 재현된 영광의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맨 위층은 전시 제목에 들어간 산과 물의 어울림을 가장 직접 전달하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여기에도 반전이 곳곳에 들쑥날쑥 숨어있다. 그렇다고 관객 여러분이 숨바꼭질 놀이의 술래처럼 이곳저곳을 헤맬 필요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의외의 지점에 뜻밖의 작품과 마주하는 기분은 즐거운 당혹감이다. 이곳에 소개되는 작품은 지난 2017년 한해에 걸쳐 작가가 칩거하며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 결과물들이다. 캔버스 위에 아크릴 물감이 덧입혀진 이들 작품은 가령 김호득이라는 작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도상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하다. 무난하다는 말이 작품의 급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작가에게 있어서 아크릴 캔버스 그림은 근래 시도하기 시작한 작업이 아니다.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이런 범주의 작업은 작가가 수묵화를 그리는 동안 자칫 빠질 수도 있는 매너리즘으로부터의 해독제 역할이라면 말이 될까. 아무튼 기교가 손에 익은 경지라는 좋은 뜻에 어원을 둔 매너리즘을 피하기 위해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찍어 펼친 이 그림들은 독특하다. 나는 그 사연을 안 뒤로부터 선생의 손을 자주 쳐다본다. 그리고 다시 그가 이번에 선을 보이는 진경산수화의 대작 <산 산 물 물>을 바라본다.

이렇게 해서 다시 한 번 실현된 그의 개인전은 감상적으로 흐를만한 여지를 최소한으로 남기며 단순함을 실현한다. 여태껏 공간 분할이 이처럼 선명히 된 것이 없었던 사건의 공간 속에서, 작가는 산이 굽이 치고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자연의 호흡을 그려내며, 여기에 자신의 삶을 포개어 놓았다. 여러 과업이 가지는 위험부담 앞에 선생은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내 오지랖과 상관없이, 그는 대구를 떠난 이후에 맞닿은 시간을 통해 첩첩산중에서 홀홀단신으로 산산물물의 경지를 향해갔다. 이 전시는 그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한 화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 부은 사연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 대단한 과시는 없지만, 여운은 길게 남을지 모른다.

(윤규홍, Art Director/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