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칠
 
The Wind Is Rising - A Spectacular Event, Is Unfolding Through A Combination of Art, Dance and Music
 2007. 3. 23 - 3. 25

바람이 일다

 

진보적인 복합 문화ㆍ예술 공간을 지향하는 갤러리와 떼아트르 분도에서 2007년 봄을 활짝 열 한 특별한 스펙터클『바람이 일다』를 선보이게 된다. 미술ㆍ무용ㆍ음악의 긴밀한 교류에 의해 탄생된 『바람이 일다』에서는 기존의 무용공연에서 무대장치와 효과음악 형식으로 무용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미술과 음악이 각기 독자적인 역할을 하게 되고, 세 장르 예술이 고유의 영역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한 테마로 합류하게 된다.
 
시간, 공간, 움직임의 예술


미술ㆍ무용ㆍ음악이 결합하는 스펙터클을 무대에 올리려는 아이디어는 기획자가 파리에서 공부하던 시절부터 싹튼 것이다. 기획자는 그곳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현대무용 공연을 관람하고, 또한 ‘안무 아뜰리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미술과 무용은 신체의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지는 스펙터클의 세계를 그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예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화의 창조는 무용공연에서와 마찬가지로 빛, 색, 형태, 양감, 깊이, 배열, 움직임 등에 의해 유발되는 촉매작용에 고무되어 이루어진다. 화가는 이러한 스펙터클에서 일련의 소재들을 연구하고 그것을 그가 구성할 그림의 출발점으로 이용한다. 움직이는 신체는 무용과 미술의 공통점이다. 화가의 움직이는 신체는 그가 창조 행위를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지각되는 것과 지각되지 않는 것에 연결되어 있다. 화면의 피부를 통해서 손끝으로 감지되는 촉각, 손에서부터 시작되어 온 몸으로 이어지는 움직임, 근육의 긴장과 이완, 호흡의 리듬 등에 의한 화가의 움직이는 신체는 감수성의 흐름을 유도하고 영감을 활성화시킨다. 그리고 무용은 이 신체의 움직임을 표현의 재료와 동기로 사용한다. 미술과 무용에서 추구하는 움직임은 바로 끊임없는 변천을 계속하는 생동하는 우리의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전개되는 공간을 더욱 활성화하는 역할이 음악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음악을 시간예술, 미술을 공간예술이라 규정짓지만, 음악이 공간적 요소를 가지는 것만큼이나 미술도 시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클레는 한 점이 시간을 초월할 수 있고 점들의 연속인 선들에 의해 리듬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음악을 공간예술, 미술을 시간예술이라 표현했다. 음악을 통해 철학의 세계에 입문한 아도르노 또한 음향은 공간을 통해서만 시간적으로 흘러가고 우리는 공간이 없으면 시간을 인식하지 못하며, 공간적 작업으로서 회화는 “공간의 활성화와 부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 시간을 초월하려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바람이 일다』라는 타이틀이 시사하듯 이 스펙터클에서는 화가, 안무가, 작곡가 모두 시간, 공간, 움직임을 그들의 창조 과정에서 숙고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작품을 표현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예술 간의 교류


『바람이 일다』에서 세 장르 예술은 개별적인 예술 형태의 틀 안에서 정의되는 여러 개념들의 차이를 뛰어넘어 같은 시간과 공간을 탐험하는 공동체의식을 스펙터클의 세계 안에서 보여줄 것이다. 일찍이 무용은 다른 예술 장르에 앞서 하나의 공동작품을 창조하기 위해 여러 예술 양상들의 통합을 시도했다. 그 예로 먼저 토털 아트의 효시는 뛰어난 예술가들을 찾아내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던 디아길레브(S. Diaghilev)의 기획으로 1917년 파리에서 막을 올린 『파라드』(Parade)에서 인데, 안무 구성이 진행되는 과정에 무대미술을 담당했던 피카소의 의견이 반영되어 비로소 미술가의 역할이 작품이 완성된 후 단지 소극적인 무대 장식을 담당하는 것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었다. 토털 아트 개념을 거부하는 반 토털 개념(wholness-anti totality)은 작곡가 케이지(J. Cage), 무용가 커닝햄(M. Cunningham), 미술가 라우션버그(R. Rauschenberg)에 의해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탄생했다. 의도되지 않은 우연에 의한 방식에 의존하여 구성된 이들의 공동 작품에서 세 예술가는 예술 간에 존재할 수 있는 서열을 거부하고 개별적인 사건들이 서로 자율적으로 교차하는 예술의 예를 보여 주었다. 졋슨 교회 극장(Judson Churche Theater)에서 태동한 포스터모던 무용가들은 여러 다른 경향들을 흡수하면서 예술 간의 경계를 허물었고, 문화적 다원주의에 기초한 그들의 작품에서는 기존의 무용 형식이 아닌 실험적인 신체 행위 그 자체가 존중되었다. 조각과 춤추는 신체가 무대 위에서 서로 어우러지면서 육감적인 관계를 성립하여 관능의 대단원을 보여준 예로 먼저 그래엄(M. Graham)과 노구치, 1990년대에 프랑스 무용가 로브(H. Robbe)와 영국 조각가 디컨(R. Deacon)의 만남이 있다. 1997년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막을 올린 『기호들』은 화가 드브레(O. Debré)가 서정성과 명상의 추구라는 공통점을 지닌 무용가 칼슨(C. Carlson)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그림의 부동적인 형태에 생동하는 삶을 주기를 원해서, 즉 미술이 무용을 유도해서 탄생한 스펙터클이다.

 

상호침투(osmosis)와 합류(confluence)


지금까지 예를 든 미술, 무용, 음악의 교차와 예술 간의 경계를 멀리하는 시도를 한 스펙터클에서도 그것이 진행되는 현장은 결국 무용이 주도하였고, 관람자는 무용을 중심으로 스펙터클을 관람하게 된다. 작품의 구상도 드브레의 예를 제외하고는 전부 무용가의 아이디어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케이지, 커닝햄, 라우션버그 트리오의 작품 『미뉴테』(Minutae)도 커닝햄이 창문을 통해 행인들의 세심한 동작을 관찰하면서 착안된 것이고, 포스터모던 무용가 촤일즈(L. Childs)와 미니멀 아티스트 르 비트(S. Le Witt)의 반복적인 형태로 구성된 안무와 조형작업, 무용과 조각의 만남에서도 늘 무용이 다른 장르 예술을 스펙터클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는 유대와 연관의 예술인 무용이 아무래도 스펙터클의 세계에서 가장 능숙한 탓일 것이다. 『바람이 일다』 기획자는 미술ㆍ무용ㆍ음악이 작품 창조의 첫 단계부터 마지막까지 긴밀하게 상호교류하고, 또한 세 장르 예술이 독자적으로 가진 여러 경향들이 상호침투하면서 새롭고 독창적인 감각과 사고, 작업방법의 제시를 통해 오로지 이 세 장르 예술의 합류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스펙터클을 원했다. 2년 전 우연히 당시 대구에 금방 정착한 임현락과의 만남에서 기획자의 오랜 숙원이 실현될 가능성이 보였다. 수목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그의 『나무들 서다』 연작은 일획의 기개와 진수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작품으로 날아갈 듯한 반투명 천에 그어진 수직선의 겹침은 생명력의 원천을 대지로부터 끌어올리고, 그것들이 설치될 공간에 바람과 햇살을 불러와 자연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이미 다악(茶樂)과 전통춤으로 구성된 공연 무대에 설치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작품은 수동적인 무대장치에 불과한 역할을 하고 있다. 새로운 스펙터클을 창조하려는 기획자의 의도를 직감적으로 이해한 그는 작곡가 박정양을 소개했다. 몇 년 전 임현락의 전시에서 받은 감동을 언젠가 음악으로 옮겨보고 싶다는 의사를 지녔던 박정양은 오랜 미국 유학 생활을 통해 여러 나라 문화와 예술을 접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서구의 작곡기법에 우리나라 전통미학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는 작곡가이다. 우리나라 현대무용계에서 영원한 현역으로 불리는 남정호는 ‘아주 흥미로운 아이디어’란 단 한 마디로 이 스펙터클에 흔쾌히 동참한다. 진솔한 몸짓을 멈추지 않는 무용가-안무가 남정호의 춤은 사회에 대한 풍자, 우리 사회구조 속 여성의 정체성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함, 넌센스, 해학과 함께 천진난만한 유희 감각으로 관람객을 매료시킨다. 무용가 남정호, 화가 임현락, 작곡가 박정양의 예술 세계는 전통과 혁신의 변증법적 발전, 동서양의 교류와 새로운 시도를 향한 열린 사고를 추구하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1년 전 분도에서 이루어진 첫 만남 때 기획자가 소개한 스펙터클 초안을 토대로 세 예술가는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스펙터클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바람이 일다』 참여자는 대구와 서울에서 만남을 거듭하면서 각자의 예술이 지닌 특성을 충분히 살리는 동시에 여러 요소가 모여 이루어지는 혼종의 영역을 구축해 왔다. 뒤늦게 스펙터클에 합류한 이종석의 영상작업은 이 모든 것 위에 인터랙티브 미디어(interactive media) 층 하나를 첨가한다.   

 

영원한 가능성


미술ㆍ무용ㆍ음악 사이에는 무한히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창조되는 예술 작품은 현실의 예민한 지각 영역에서 비롯된 여러 요소들과 형태가 서로 교차하는 장소이다. 『바람이 일다』는 한 겨울 동안 동결되었던 대지의 에너지가 봄의 기운으로 활성화되면서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작품이다. 2층 갤러리 임현락의 설치작품 사이에서 펼쳐지는 즉흥춤을 시작으로 관객들이 무용수를 따라 지하 떼아트르로 이동하면서 관객들의 움직임이 스펙터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다. 또한 이 스펙터클은 예술작품을 그것의 완성된 모습이 아닌 설립과정을 통해서 지각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관객들은 화가의 신체와 화면 사이의 치열한 접촉에 의해 선이 그어지고 목탄이 부서지는 드로잉 퍼포먼스 현장에서 예술작품이 창조되고 있는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게 된다. 기획자를 비롯한 세 예술가는 스펙터클이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작품 소개 혹은 자신의 예술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하면서 창조과정의 신비를 깨트리고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시도를 할 것이다. 세 예술가의 공동작업 『바람이 일다』는 삶의 찬미를 헌정하는 살아있는 장소를 창조한다. 이것은 가능성과 새로움을 지향하는 ‘영원한 도래’를 의미한다. 이 가능성이 지속되는 한, 예술가에게 생동하는 삶이 존재한다. 이 말은 새로운 창조를 향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이상, 예술가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스펙터클을 후원한 영도벨벳, 삼한 C1, 금복주, 동원약품과 대구시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이 없었더라면 『바람이 일다』는 아이디어로만 남았지 결코 무대에 올려 질 수 없었을 것이다. 후원처들을 주선하고 무용수들의 의상을 협찬한 패션 디자이너 박동준의 예술을 향한 열정에 갈채를 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화ㆍ예술을 사랑하는 분도후원회와 관객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기획자 박소영(Paris I 대학 조형예술학박사,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