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cophony : Shuffle Cards
 
Yoo Bong-sang
 2013. 5. 13 - 2013. 6. 22

 때는 2000년 즈음, 서양화가 유봉상이 그림 대신 철판에 가득 박힌 못 작업을 가지고 등장했을 때 미술계의 반응은 뜨거웠다. 못을 박고, 머리를 쳐내고, 표면을 갈아내는 힘든 과정, 다분히 폭력적인 행위를 통해 완성된 작품 앞에 관객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환호했다. 어떻게 보면 점묘화를 닮았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조각 부조 같기도 한 그의 못 작업은 독창적인 이미지를 일구어냈다. 물건을 단단히 고정시키거나, 다른 무엇을 걸어놓는 못은 유봉상의 손을 거쳐 예술작품이 되었다. 원래 쓰임새를 벗어나서 작가의 눈을 사로잡은 못의 용도는 반짝이는 금속의 성질 그 자체였다.

 못 작업의 시초는 유봉상의 프랑스 체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보스 지방의 아름다운 풍경은 작가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주었다. 나는 그곳을 가보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능히 상상을 할 수 있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진 그곳의 경관은 수 없이 반짝이는 못들의 군집으로 재현된다. 머리가 잘려나가서 핀처럼 보이기도 하는 못은 매우 특별한 시각적 효과를 우리에게 전한다. 작품을 보는 장소나 위치에 따라 작품의 색조가 달라진다. 넘실대는 그 이미지는 이 세계와 작품이 끝없이 서로를 비추는 창과도 같다. 영롱하게 반사되는 빛은 사각의 작품 틀 안에서 우리를 낯선 곳으로 안내하고 있다.

 사실, 나는 그의 사적인 이야기에 관해서 잘 모른다. 그가 평소에 남긴 인터뷰나 그를 다룬 비평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이해하는 내용들은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글의 처음, 즉 캔버스에 연필과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반 회화로부터 지금의 방식으로 바꾸게 된 계기를 따져보는 일일 것이다. 이 전환은 성공인가? 물론, 내가 작가를 만나고, 우리 전시 공간으로 그를 초청한 건 순전히 못 작업과 그것을 둘러싼 명성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건 모른다. 그가 예전처럼 정통한 화가로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빛나고 장엄한 작품 앞에서 그는 자신이 다져온 예술의 이력에 관하여 별다른 자랑을 하지 않았고, 반대로 자칫 있을지도 모르는 후회나 회의에 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다. 오직 작가는 작품으로 말을 하고 있다. 그게 나쁜 일은 아니다.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시점이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이라는 점을 그는 알고 있다.  

 아무튼 작가가 가지는 결정의 동기를 꿰뚫어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신분석학적 비평처럼 특정한 시점의 내밀한 심적 구조로부터 그 완성작이 나오기까지 거쳐 온 패턴을 추적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는 자신이 머릿속으로 담아왔던 이미지들을 끝없이 끄집어내야만 한다. 아주 단순한 추상적 패턴으로부터 알파벳 필기체와 고풍스러운 건축물, 그리고 울창한 수풀과 파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 이미지는 하나씩 차례대로 세상의 빛을 받았다. 어떤 부분은 못이 빽빽이 박혀있고, 어떤 부분은 텅 비어 있는 대조가 만들어 낸 공간 속에 커다란 경관을 그대로 옮기겠다는 기획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은 대작으로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의 못 작업은 반박의 여지가 없이 우리가 예술작품을 통해 느끼는 경탄스러움의 전형을 불러일으킨다. 선과 색과 면의 구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좌표와 그 산포도를 통해서 대상을 재현하는 힘, 여러 가지 효과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힘, 그리고 그 비범한 점들의 이합집산을 의미 있는 그림으로 해석하는 힘, 이 힘들로 인해 작가와 관객의 시점이 정확히 일치해야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있는 게 그의 작품이다. 이는 작가로 하여금 분명한 원칙을 세우게끔 했다. 그 원칙은 일종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 눈으로 보아서 분명한 이미지를 표현할수록 유상봉의 기법이 더욱 돋보인다. 따라서 추상보다는 구상적인 화면이 선호된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작가는 지금 자신의 작품을 자연의 풍광으로 채우고 싶어 한다. 그의 작품은 현대 미술의 몇 가지 작동방식에 관해서는 침묵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이해한 것을 이해하기, 무모함으로 가득찬 광기에 대한 경배, 예술과 사회의 상호 조응 등과 같이 암호처럼 풀어내야하는 현대미술의 여러 주제들을 그는 일부로 배제한다. 

 어떻게 보면 나는 유봉상의 작업에서 급작스럽게 많은 것을 취하려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고, 또한 서로 가는 길이 다를 수 있다. 나는 그가 작품을 통해 발언하려는 것 너머에 있는 무엇까지 욕심을 낸다. 마음에 드는 것은 전부 가지고 싶어하는 철부지 애 같은 내 욕심은 지금 작가가 우리 앞에 펼쳐놓은 놀라운 이미지가 있으므로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에 짐짓 무심한 듯 그가 내딛는 고집스러운 행보는 다음을 궁금하게 만든다. 현대 미술을 오래 지켜봐 온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아니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더라도 그의 작품 속에서 본질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이 점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기법의 혁신과 능수능란한 손놀림,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이 뒤따르는 반복된 노동이 낳은 결과가 가리키는 본질이다.


(윤규홍, Art Director/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