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cophony : Shuffle Cards
 
Park Kyung-A - Promotion for young artists
 2009. 3. 9 - 4. 4

풍경의 조건, 실재와 부재(不在) 사이

- 박경아의 회화세계 -
   
1. 떠도는 풍경
이 작가는 특유의 풍경화로 삶을 대변한다. 역시 사람들이 풍경을 물들이고 풍경이 또한 사람들을 물들인다. 풍경의 조건은 그렇듯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특히 박경아의 풍경들은 거의 인물들이 표현되고 있지 않다. 간혹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도 풍경의 한 부분으로서 마치 서 있는 나무들이나 숲의 그림자와 등가가치로 표현된다. 작가는 그만큼 가시적 풍경을 전제로 하면서도 실재적인 풍경 너머 심리적 풍경을 반추하고 있다.

풍경의 조건과 그 자리는 그렇듯 실재와 부재 사이에 부유한다. 작가의 시선이 인지와 상상 사이에 놓여 있는 한, 감각을 통하여 감각을 넘어서는 자리에 진정한 풍경이 존재한다.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대변하는 것이 창문이다. 창문은 이곳과 저곳, 차안과 피안, 현실과 꿈, 체험과 회상 사이를 넘나들고, 또한 시간의 기억 사이를 넘나드는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 창문은 해독되어야 할 일종의 암호로 존재한다.

 

2. 세상의 문과 눈
독일 낭만주의 작가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는 늘상 창 밖을 주시하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시대 낭만적 아이러니를 대변하는 피안에의 동경을 암시한 것이다. 그만큼 풍경화는 시대정신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21세기 다국적인 테크놀로지의 세기에 박경아가 바라보는 세상의 문은 더욱 멀고 또 흔들리고 있다. 너무나 보이는 것들이 몽롱해서 마저 다 그리지 못한다. 그래서 미완(未完)의 그림처럼 흐릿하게 남아 있다. 끝내 삶과 예술이 미완이듯 그의 그림은 일찍이 미완의, 그리고 미결(未決)의 세계를 전한다. 작가의 눈은 이미 그런 세상을 보아버린 듯하다. 그러므로 자연의 모습이나 건물의 일부, 혹은 소나무의 윗부분 등은 다만 자신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장치에 불과하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풍경이라도 풍경의 표정으로 이미 작가의 삶을 대변하는데, 이 번 전시 작품 중에는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들도 몇 점 선보인다. 숲길의 빛과 그림자처럼, 때로는 얼룩처럼 몽환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삶의 길에서 느껴온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3. 시간의 기억 속으로  
모든 작업의 주 모티브가 <내 안의 창>이듯이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적인 출구이면서 또한 지나간 시간의 기억과 미래의 길을 예견케 하는 통로가 된다. 투명한 유리와 반투명의 커튼 사이로 보이는 산 덩어리나 들판 풍경, 혹은 하늘과 시멘트 건물, 건물의 실루엣과 나뭇가지들 등은 모두 빛과 그림자, 바람결의 기운에 용해되어 아주 비현실적이면서도 또 다른 시간의 지층을 투영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과거의 회상이기도 하고 노스탤지어이기도 하고, 미래의 예견이기도 하고, 혹은 찰나의 눈에 비친 영원성이기도 하다.

오랜 독일 유학과 귀국 후의 낯섦은 어느 곳에건 안주할 수 없는 ‘고향상실증’과 ‘집없음’의 심리적 불안감을 배태하게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가에게 있어 풍경회화는 바로 그러한 심리를 토로하는 매개체가 되면서 동시에 숨을 쉬기 위하여 또 하나의 창을 마련해야 하는 정신적 필연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의 예술적 보편성은 어디까지나 작가 한 개인의 체험의 표출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곧 모든 인간의 실존적 정황은 삶과 죽음, 안과 밖, 여기와 저기, 찰나와 영원 사이에 부유하며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고향상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작가가 토로하는 낯선 길의 불안과 희망은 우리 모두의 불안과 희망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그의 연민의 시선은 우리 모두에게로 닿아 있다. 역시 관객들은 우도 쇨 교수도 지적했듯이 “그의 풍경 속에서 자신을 잃기도 할 것이고, 동시에 자신을 찿기도 할 것”이다.

                                                                       
장미진(미술평론가, 미학박사)

 

 


노스탤지어의 눈물
 
두터운 구름층을 투과한 빛이 넓은 평원 한 자락을, 지붕 위 유리 창문 한 모퉁이를 슬며시 스쳐간다. 빗줄기 사이로 아스라한 숲 너머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오후 햇살, 이렇듯 박경아의 그림에서 빛은 찬란하지도, 강렬하지도, 찰나적으로 변하거나 한 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고 은은한 여운을 남기며 스치듯 지나가 버린다. 작가는 가시적인 대상에 의해서만 빛이 존재한다는 색채 유물론을 떠나 색을 통해 내면세계로 접근한다. 실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빛이 남긴 여운은 고즈넉한 풍경을 서정적인 정서로 물들인다. 원천적 문화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그에게 풍경은 실제 풍경이 아니라 노스탤지어를 가시화하는 시각적 장치에 불과하다.

 

이곳과 저곳
1998년 박경아가 처음 발을 디딘 독일 땅 라이프치히는 한때 유럽의 철학 및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그는 예술적인 흥취에 취하기보다는 늘 찌푸린 하늘과 툭하면 비오는 날씨로 인해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어둡고 습한 환경은 작가를 멜랑콜리한 감정에 젖어들게 했고, 점차 그는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게 된다. 하지만 멜랑콜리 기질은 작가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대신, 그의 예민한 감수성과 자의식을 자극하여 결코 좌절하지 않는 예술가가 되겠다는 의지로 스스로를 다잡게 하는 역할을 한다.

뮌스터로 옮겨온 이후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는 늘 접하는 주변 풍광을 빌어 자신이 남기고 온 것들에 대한 향수(鄕愁)를 담아내는 작업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이곳과 저곳’의 구분은 항구적이다. 특히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에서 이러한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눈」 연작은 오로지 이끼색과 회색의 농담으로만 조절된 색채 톤만큼이나 단순하게 구성된 작품으로, 화면의 1/3을 차지하는 위쪽은 지평선, 그 아래쪽은 평지로 나뉘어져 있다. 가물거리는 지평선과 접한 구릉지 뒤 아득한 하늘 부분과 그 아래로 죽 펼쳐진 평원의 맨 아래 부분은 어두운 그림자로 덮여있다. 이 둘 사이에 위치한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는 눈 덮인 평원, 이곳은 어둠 속에 실체를 숨긴 작가와 머나먼 고향, 즉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시각적인 고리가 된다. 내면 시야의 서정성과 명상을 추구하는 작가는 늘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있는 고향으로부터 미적 향수(享受)를 추출해 낸다.

 

소요하듯
풍경을 암시하는 대상이 전혀 없는 「안개」는 넓고 큰 붓이 유유자적 소요하듯 지나간 흔적들로만 채워진, 추상에 가까운 그림이다. 조용하고 사색적인 작가에게 계절에 따라 변모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안개, 비, 눈, 늘 아쉽게 사라지는 햇빛, 이 모든 것은 예사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경제적인 궁핍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주 자전거나 도보로 도시 주변을 천천히 거닐면서 마음을 비우는 여유를 즐겼는데, 그 순간만은 현실의 모든 심려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서 정처 없는 소요에 심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그가 낯선 이국의 풍경에서 고향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기 시작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정신적인 풍요로움 덕분일 것이다. 소요하는 자세로 관조하는 삶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가 자연스레 묻어 나옴을 작가는 알고 있다.

서정적 표면으로 불릴 수 있는 박경아의 그림은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을 반영해 준다. 차분한 색채는 그에게 감동의 장소요, 평면 위에 성숙해 가는 순간의 생생한 체험 감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색채는 그림의 표면을 감동으로 변화시키는 한 방편이고 이 색채 차원 안에서 그림은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 접했거나 혹은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풍경에서 그는 순간, 색채, 감동을 체험하고 이런 것들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할 줄 안다. 이런 예술가-자연-삶의 동화(同化)에 의해 그림은 영혼의 울림의 장소가 된다.
 
멀고도 가까운
박경아의 그림에서는 언제나 무엇을 찾아 헤매는 보이지 않는 시선이 감지된다. 독일에 도착한 후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던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매우 나르시스적인 방식으로 작업했다. 주변 풍경에 고향을 그리는 감정을 오버랩하면서 작가 스스로가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헌신의 표상처럼 자아를 선택했고, 그런 이유로 그의 감성적 풍경에는 관람자의 마음을 동요시키는 작가의 시선이 숨어 있다.
「커튼」에서는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수직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는 붓놀림에 의해 이미 구축된 풍경이 와해되어 버린다. 커튼 뒤 물안개처럼 흐릿한 풍경은 이미 사라진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쉬는 곳이 되어 버리고, 그곳에서 작가는 그리운 사람들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이리하여 그의 작품은 실제의 풍경이나 상상의 풍경이 아니고 이 두 가지 모두이며 회상과 변형, 그리고 명상의 장소가 된다.
「... 였다」 연작도 수직적인 붓놀림이 유리창 효과를 냄으로써 복합적인 공간 분할이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유리창을 통해 굴절된 빛은 멀리 떨어져 노스탤지어의 눈물에 가려진 듯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든다. 흐릿한 초점은 장소와 시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방해하고 관람자의 시각에 혼란을 가져오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먼 이국의 풍경일 수도, 가까이서 늘 보는 풍경일 수도 있는 이미지는 우리의 시선을 그 안으로 끌어당기고 동시에 밖으로 내몬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두 시간이 서로 다가오고, 멀리 떨어진 두 장소가 서로 가까워진다는 아우라의 법칙을 감지할 수 있다. 현재가 과거로, 현재가 미래로, 순간이 영원으로 되면서, 오로지 사라질 것만이 바로 그 다음 찰나에 아우라를 소유하게 됨을 보여준다.

 

서정과 시가 흐르는 박경아의 회화는 안과 밖, 움직임과 멈춤, 드러냄과 숨김, 밝음과 어둠, 구축과 해체, 질서와 카오스 같은 서로 상반되는 요소 사이의 변증법이 지속되는 초월의 시공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오늘날 회화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현란함, 요란스러움, 말초적인 감각과는 동떨어진 그의 그림에는 시간의 부재(atemporal), 즉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잊어버렸던 감성을 일깨워주는 은밀한 마력이 있다.

한 겨울 바람에 맞선 민둥산을 연결하는 애처로운 다리 하나, 이보다 더 작가의 외로움을 응축하는 대상이 있을까. 지금 홀로 고향으로 되돌아온 작가에게 저 다리는 이제 마음의 고향이 되어버린 뮌스터를 향한 그리움을 상징한다. 노스탤지어의 눈물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인간조건을 예술로 극복하려는 박경아에게 마르지 않을 창조의 샘으로 남을 것이다.
                                                                       
박소영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