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칠
 
Brushed, non-brushed
 2008. 12. 8 - 12. 31

Brushed, non-brushed after 10 years

 

한국현대미술에서 추상미술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모노크롬'이라는 용어로 분류되는 1세대 작가들을 낳았다. 그들은 서구문화의 유입과 전통의 계승이라는 상반된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이제껏 본격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추상의 세계를 다루었다. 80년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로서 활동해 온 김택상, 김춘수, 도윤희, 박기원, 장승택, 전영희, 제여란, 천광엽, 홍승혜 이들 9명 작가들은 추상이라는 양식적 유사성과 연령으로 분류했을 때, 한국 추상미술의 2세대에 해당한다. 10년 전 대안공간이었던 서울의 사이갤러리에 열렸던 "Brushed : Non-brushed(붓에 의한 회화: 붓이 떠난 회화)"전은 이들 작가들이 모여 서로 토론하고, 예술적 담론을 공유하면서 이루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들은 1세대 추상작가들에게 부여된 '전통의 현대화'라는 의무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며, 정체성의 문제를 집단화하는 대신 미시적 차원으로 세분화했다. 이들 작가들은 일정한 양식이나 이즘을 표방하는 그룹으로서의 성격을 띠는 대신에 서로간의 지적인 교류와 미학적 과제를 토대로 관계의 망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10년 전 "Brushed : Non-brushed(붓에 의한 회화: 붓이 떠난 회화)"전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형식적 유사성이나 차이점을 기준으로 2명의 작가군으로 나눈 다음 각각 2주간의 기간 동안 전시를 함으로써 스스로의 작품을 분석하고, 분류했다. 이는 작가들이 추상미술 자체에 관한 자의식을 가지고 작품에 접근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세대의 추상미술가들이 보여준 전위에의 추구라는 혁명성을 의식하지 않았으며, 서구의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행로에도 쉽게 편입되지 않았다. 그들은 추상을 관념적으로 다루지 않고, 시적인 상징체로 변환해내거나, 이항대립의 개념들을 무마시키는 상호작용의 기제로 삼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10년 전에 열린 전시의 맥을 이어나가고자 기획된 이번 전시는 브러쉬드(brushed)와 넌브러쉬드(non-brushed)를 쉼표로 연결했다. 이들은 다양한 미학적 과제들을 하나의 방향성으로 묶어두기 보다는 쉼표를 통해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한다. 때로는 상충하는 듯 보이는 상반된 형식적 요소들은 그들의 자유로운 조형 언어의 구사를 통해 풍부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원칙을 통한 구속과 원칙으로부터의 이탈(on & off)의 반복"을 통해 기하학의 증식을 유도해내는 홍승혜의 작품은 수학적 이성을 예술의 자유로움으로 번역해내고, 건축물과 같은 일상생활 공간의 한 부분을 기하학적 형태로 재현함으로써 구상과 추상의 구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녀의 작품에서 이성과 감성, 구상과 추상은 개념의 차이를 넘어 작용과 반작용의 과정을 지속한다. 작품 제작과 동시에 항상 텍스트 작업을 수반하고 있는 도윤희는 철학적 사유와 그것의 표현, 언어적 유희를 동시에 이루어내고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기억과 사유는 언어와 이미지라는 두 매체 사이의 변주 속에서 지각의 다양한 층위를 이루어낸다. 언어의 감옥으로 가둘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미지의 표출은 작가의 사유의 흔적이자, 추상미술의 가능성이라 할 수 있다. 부정형적인 문양과 안료의 덧칠로 인한 화면 속에서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환상이나 기억의 세계는 작품을 보는 이로 하여금 추상이라는 조형 언어의 비언어적 측면과 대면하도록 이끈다. 이렇듯 도윤희 작품은 '쓰기'와 '읽기' '지각'과 '감흥'을 동시에 체험하게 하는 변화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제여란의 작품은 회화라는 평면매체가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는 무한한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을 대면했을 때 연상되는 '밤의 인상'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형상화라기보다 관람자를 심상의 세계로 투영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becoming & becoming"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생성의 원리는 작가의 지적대로 그녀의 작품을 '자연'이라는 현상으로 천착하게 한다. 변화의 매개체인 그녀의 회화는 캔버스의 표면을 벗어나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안료의 묵직한 마띠에르는 작품을 감상하는 이를 심연의 세계로 이끈다.

 

화가의 붓질(brushed)과 청색의 조화가 이루어내는 공명의 세계를 보여주는 김춘수의 회화는 색채 자체가 지니는 고유성이나 물질성을 드러내는 대신에 회화적인 제스처를 전면에 제시한다. 그는 캔버스의 평면과 안료, 붓터치 등 회화의 표현수단을 내밀한 심적 울림의 공간으로 창출해 낸다. 추상 작품이 제시할 수 있는 이러한 체험의 상황은 바다나 하늘을 연상케 하는 아련한 상징적 가치의 드러남으로 인해 더욱 생동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그의 회화에는 잔잔하고 고요한 파도의 부서짐과 힘찬 파도의 강인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안료의 물질성을 두터운 마띠에르을 활용하여 두드러지게 하면서도 동시에 화면위에 희미한 부정형의 형태를 그림자처럼 드리움으로써 회화에 '숨(breathing)'을 부여하는 전영희의 작품은 자연의 생성과 소멸을 회화를 통해 은유해낸다. 즉 그녀는 회화에 관한 자기지시적 의식을 자연이라는 생명의 화두와 엮어냄으로써 예술에 대한 자의식을 폭넓은 사유의 장으로 유도한다.

 

천광엽은 기계적인 화면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보는 이의 지각작용이 계속해서 그림과 작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의미 변화의 매개체로서 작품을 드러낸다. 그는 "homage to rothko"라는 작품의 제목을 사용해서 미술사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측면은 1세대 작가들과 구분되는 면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추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기를 시도하면서, 스스로의 작품 세계에 관한 기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그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일부로 편입되면서 그림 '읽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박기원은 평면적 구성속에서도 미묘한 깊이감을 주는 기법을 통해 관람자의 관람 행위를 동적인 움직임으로 유도해 낸다. 그의 작품에서 환영의 효과는 추상의 고유한 조형 요소들에 의해 응집되었다가 해체되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장승택과 김택상은 빛의 작용을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 비물질화하고 있는데, 전자는 재료의 '물질성'을 실험하며, 후자는 물감의 번짐을 화면에 표출함으로써 '비물질성'을 탐구하고 있다. '물질을 통한 비물질'의 추구는 비평문에서 흔히 언급되고 있는 용어이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은 그러한 추상적 분류로 범주화하기보다는 갤러리라는 실제 공간에서의 움직임과 결부된 측면으로 조명했을 때 더욱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김택상의 회화는 빛의 효과를 담지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어떤 장소에 어떻게 설치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발휘한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회화이지만 특정한 장소와 밀접하게 결부되었을 때 생명력을 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자칫 전시에서의 공간 연출을 강조할 위험성을 낳기도 하지만, 그러한 측면보다는 작품의 의미를 현실공간에서 어떻게 실현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을 작품의 중요한 부분으로 견인해낸다는 점에서 평가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또한 장승택의 회화는 전통적 프레임의 형태를 벗어나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지는 작품을 제작하는데 이 또한 빛의 작용과 더불어 물리적 공간과의 작용을 과제로 남기고 있다. 이들의 작품은 회화의 평면성을 외연상 유지하면서도 그 효과의 측면에서는 평면을 뛰어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언급된 9명의 작가들은 모두 10년 전의 행로를 꾸준히 이어가면서 현재까지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탐구와 집념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작품을 다룬 비평문에서 등장하고 있는 평면과 지지체, 물질과 비물질성, 일루젼과 실제, 공간 등 추상예술에서 비롯된 미학적 과제들은 1세대와 공유된 것들이다. 하지만 이 세대의 작가들은 앞서 살펴본바와 같이 추상이라는 조형언어를 형식적으로 도식화시키거나, 최신 문예이론 등의 실현체로 가두어 두지 않는다. 이러한 요인이야말로 이 작가들을 단순히 연대(年代)별로 분류할 수 없는 이유다. 그들은 어떤 주의 주장을 내세워 결집하는 방식대신에 상호 교류하고, 서로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는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새로운 방법으로 연대를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작품 각각은 다양한 미적 경험의 층위로부터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낼 수 있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형상 언어의 다채로운 수사(修辭)를 구사함으로써 추상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물질과 비물질, 구속과 이탈, 존재와 생성 등의 이항 대립은 상반되는 요소라기보다 하나의 연결고리이며, 예술적 창조의 근원으로 작용한다. 또한 추상 회화에 대한 인식과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고자 하는 의지는 이들 작품에서 투쟁한다기보다 자유롭게 공존하고, 병치된다. 서구 모더니즘 회화의 최종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추상은 서양과 전혀 다른 역사와 상황의 한국에서 새로운 토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9명의 작가들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추상미술의 2세대를 한국현대미술의 역사적 지평 속에서 바라보고 평가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단계에서 "Brushed, non-brushed after 10 years"전은 작가들 스스로의 교류에 의한 결과물을 보여준 주요한 사례라는 점에서 기록의 가치가 크다고 할 것이며, 앞으로 전개될 이론화 작업의 중요한 초석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김민지(미술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