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칠
 
An Jong-Hyeon
 2007. 10. 22 - 11. 14

빛으로 생성되고 해체되는 뭍과 물의 경계에서


산과 강, 강기슭 풍경의 소략한 묘사를 알루미늄 판에 새기는 작업. 우선 알루미늄이라는 금속판 재질의 독특함에 눈이 가고, 절삭공구로 그 판 위를 파들어가서 생기는 흔적으로 형상을 만드는 방법 역시 독특한 접근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흔적 위에 상감기법으로 색상을 올림으로 색상의 미묘함을 보이는 <물빛>은 감각적인 그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금속판을 파고 들어가서 형태를 찾아내는, 새기는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는 자신의 의지로만 되는 세계가 아니라 물질이 다른 물질을 만나 반응하는 그 순간까지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태도는 견고한 외형의 형태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잠시도 멈추지 않는 빛의 흐름을 잡으려는 것이다. 빛의 새김을 통해 견고한 정태감을 얻으려 하고 빛을 잡아두려 한다. 이는 서로 상반되는 두세계 혹은 성질 사이에서 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견고함과 연약함, 생성과 해체, 시간과 무시간, 흐름과 멈춤이라는 두 세계에…


바깥의 풍경을 내면화하는 검은 거울


알루미늄 판에 새겨진 풍경들은 빛에 의해, 조명에 의해 새롭게 반응하게 된다. 형상의 가변성을 재료의 성질에 기탁해서 표현효과를 증대 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가변적 풍경은 빛이라는 것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고, 그 빛은 언제나 강물이라는 움직임에 의해서 드러나게 된다. 강물은 자연이지만 물은 다른 것들을 비춘다. 그 비추이는 성질은 빛에 의해 가능한 것이다. 그는 빛과 강물이라는 것에 시선을 옮겨본다. 강물이라는 거대한 풍경이 아니라 빛에 반응하는 강물 자체를 응시하려 한다. 그 풍경은 이제 풍경이기보다 내면화의 과정으로 드러나게 된다. 물결 하나를 응시하면 그곳에는 풍경이 가진 거리도 시간도 없다. 전체라는 외경이 없어지면서 순식간에 내면의 모습으로 바뀐다. 그것은 외경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기도 하지만 외경, 바깥의 모든 것들이 가진 내면이기도 할 것이다.

강물은 거울 이미지를 가진다. 세계를 비추이고 자신을 비추인다. 작은 그릇 속의 물에도, 작은 샘에서도 물은 바깥을 비추이고 자신을 들여다 보게 한다. 그 강물에 비친 사물들, 혹은 세계는 온당하게 비쳐지기도 하지만 빛에 의해 부서지기도 한다. 그리고 내면화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는 거울 한쪽을 들여다본다. 강물 한쪽을 가져와서 그곳을 새기면서 그는 거대한 시간과 공간을 담는 강물을 잊고 자신이 본 작은 강의 한쪽을 본다. 그래서 강 자체를 들여다보려 한다. 그 강은 빛으로 드러나 있지 않고 암흑이다.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는 암흑이다. 나는 여기서 2000년 <별 지구 사람>이라는 유리구슬 설치 작업에서 전원을 껐을 때의 암흑을 떠올려본다. 그가 보려할 때, 비로소 작은 빛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보고자 할 때 작은 빛이 생성되어 외물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가 절삭공구로 스테인레스 mirror라는 새로운 금속판을 위를 지나갈 때, 그 운동이 검은 금속거울 위에 깊이를 만들어갈 때, 새기려 할 때, 비로소 작은 빛으로 외물이 만들어진다. 거울 위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나 바깥 풍경이 아니라 거울 안쪽에 있는, 바깥 것들의 안쪽에 있는 풍경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풍경은 전체를 보이지 않아 공간은 있는데 시간이 들어설 자리를 잃는다. 무시간의 그 풍경은 자신이 내면을 보여줄 뿐 바깥 풍경과는 무관한 풍경이 된다. 수없이 실재하는 것들이 비쳐지지만 각인된 형상은 그것들이 내면이 되고 만다. 그것조차 점으로 파들어가 새기고 있다. 그러나 그 새김은 포착이기보다 놓침에 가까우며, 형상이기보다 기운의 흐름에 가깝다. 검은 스테인레스 mirror 앞에는 보는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비쳐지지만 어는 것도 선명한 것이 없이 가상처럼 보이게 한다. 그 사이 그가 새긴 물살들이 비쳐지는 바깥 것들의 형상을 분절 시키면서 내면풍경으로 다가서게 한다. 풍경의 안쪽에서, 그의 초기 화면에서 목격되듯, 먼지 같은 빛살로 가득찬 공방을 그리듯 금속판에 새기는 듯한 무수한 점들 사이에서 혹은 빛 사이에서 바깥의 풍경은 생성과 해체를 계속하고 바깥보다 자신이 내부를 들여다보게 한다. <검은 거울>은 그의 심리적 층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그가 다다른 곳, 아니면 이제부터 가야할 곳을 향한 출발점으로서 현재의 그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그의 작업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다 문득 이런 생각에 잠긴다. 그가 지금 있는 곳, 그가 바라보는 곳, 그를 말 할 수 있는 현재는 어떤 것일까.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말 한마디는 없을까 하는 조바심이다.

시야에서 모든 것을 거두어버리는 상승하는 빛의 이미지 그게 그의 <물빛>이다. 모든 형태들이 한 순간 빛으로 빨려들고 빛으로 내뿜어져 나오는 순간이다. 정오의 바닷가나 강변에서 만나는 파도와 물상이 만드는 소리가 빛으로 산란하는 찰나의 섬세함을 그의 작품에서 목격할 수 있다. 찬란하게 강물 위로 햇살이 떨어지는 그 순간, 그런 순간을 포착하고 그 빛무리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작업이다. 눈부신 빛살로 가득한 그의 화면은 모든 것이 정지되는 한 순간의 경험을, 그 상승의 무념을 보여주고 있다. 산란하는 빛 사이의 무념, 그것이 그의 <물빛>이다. 그의 작업은 빛이라는 것에 의해 모든 것이 산란해버리는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그곳에는 형상들이 빛처럼 명멸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명멸의 내부를 들여다보려 한다. 실체가 없지만 실체 없는 그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지난한 응시, 그것이 그가 지금 도달해 있는 곳일까.

 

강선학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