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cophony : Shuffle Cards
 
Hong Soo-Yeon
 2007. 9. 3 - 10. 6

단면 혹은 단면들

 

홍수연의 작품은 작업의 과정에서 생성된 얼룩, 물감의 잔재, 말라붙은 색체의 껍질로부터 출발한다. 한동안 그녀는 자신이 남겨놓은 물감의 레이어를 떼어내어 다시 화면 혹은 유리벽 위에 붙여나가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이 색면들이 다시 화면위에 나타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독립적인 색면들은 스스로 진화해 이제는 화면 위에서 섬세하게 자신의 운동을 드러내는 형태들로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성을 구현하기 위해 홍수연은 미리 농도를 조정해놓은 액상의 색체들을 중력의 힘을 이용해 흘림으로써 화면 위에 얇은 레이어를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최소한의 두께를 지닌, 화면을 향해 최대한 밀착되어 있는 회화적 대상을 만들어낸다. 이 운동성에 대해 이동석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디로 갈지, 움직임이 끝나면 무엇이 남겨질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우림 삶이 그런것처럼”
이 색면들은 바다 속을 떠도는 생물이나 미시계의 세포처럼 가볍고 하늘거리면서도 때로는 그것 자체의 존재에 대해 강렬한 확인을 요구하는 듯 명확한 윤곽을 지닌 채 움직인다. 이들의 존재감은 개별적인 색면들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이 윤곽들의 겹침, 다층적인 레이어의 교차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즉, 개체들이 시각적으로 완전히 평면적인 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볼륨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반투명의 레이어들 사이로 점점 깊어지는 시각적 깊이에 의한 것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붙여진 <스틸컷>이라는 제목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순간들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다수의 연속체들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면서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튼 전체집합을 구성한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연속체의 단면이며, 이에 대한 은유를 우리는 사진이나 영화의 <스틸컷>에서 발견한다. 홍수연의 색면들은 추상적 연속체들의 단면들, 즉 상호 중첩되거나 분리된 사건 혹은 대상들의 순간적 관계들을 상호-침투적(inter-penetrable)인 순간들의 형태로 나타낸다. 화가의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것은 정말 알기 어려운 사실들 가운데 하나다. 화가들 가운데는 재현과 현존의 명멸을 끊임없이 따라잡아야 하는 이들이 있다. 극도로 추상적인 이 작업에 대해 현실이 화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작가가 그 과정의 내부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기를’바라는 것이다. 홍수연은 일련의 진화를 통해 어떤 비전의 내부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갈라지는 길의 길목에서 그녀가 더욱 안쪽으로 향하는 길로 접어들기를 바란다. 그것이 관객이 화가에게 바랄 수 있는 뻔뻔스럽지만 유일한 바람이다.


유진상_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

 

 

홍수연의 그림은 여러 아크릴 물감층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그러한 다층구조를 만들기 위해 물감이 말라야 하는 물리적 시간과 반복행위가 요구되며, 더불어 계획되고 섬세한 물감조절과 통제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최근 4~5년동안 홍수연은 독창적인 전시제목으로 자신의 생보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왔다. 그것은 “vestibule”(고양이의 사뿐한 움직임 같은 의미로 이는 유동성과 밸런스를 강조), “Firmament”(창공,하늘을 지칭, 즉 창공은 정지된 이미지로 보이지만, 실상 구름이 있어 동적인 이미지임) “Hoopla”(축제나 이벤트 중에 일어나는 모습들 흥분과 동시에 긴장감을 만드는 움직임)등으로,작가는 유동성 및 가변성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시하고 있다. 이는 제작과정에 느낄 수 있듯이 시간의 흐름, 즉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해야하는 작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며, 그에 따라 레이어를 한겹 한벽 쌓아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홍수연은 형태(form)의 레이어를 캔버스에 측적시킴으로써 , 형태와 색체의 유연한 상호작용을 유도하고 그로부터 리듬감, 긴장감 등 미묘한 회화적 언어를 모색한다. 이번 전시도 그녀가 추구해온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전에는 다수의 레이어(형태)의 생성과 집적에 다소 역점을 두었디면, 지금은 하나의 레이어(형태)에 초점을 맞추고, 그 형태가 갖는 독특한 특성, 기능, 효과등을 탐구하고자 한다. 전시에 출품된 시리즈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대변하는 작품들이다. 영화에서 배우가 선택되고, 또한 형태의 지로를 작성해 나가듯, 여러 형태의 레이어 중 하나가 선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형태가 자아내는 뉘앙스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광색을 첨가하는데, 야광색은 인공적이며 현대적인 색깔로 강렬한 대비현상을 유발한다. 5개의 캔버스로 구성된 연작은 흑과 백이라는 무채색을 제한함으로써, 색체에서 발현되는 감각적 효과를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다양한 형태가 빚어내는 고유의 입체감과 운동감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한 작가의 작품경향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흘러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홍수연의 회화도 시나브로 변모하며 진행되고 있다. 그 순간을 포착하여 스틸컷(still cuts) 처럼 보여주는 것이 어번 갤럴리 인에서의 개인전이며, 그 지점이 바로 홍수연이 서 있는 현재의 자리이기도 하다.

 

류한승

 

 

끝없는 반투명의 잔상들

 

홍수연 작품의 매력은 고요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미지가 만드는 잠정적인 느낌에 있다. 어는 한 순간 이미지가 응결되어 있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 윤곽이 시시각각 바뀌어 버릴 것 같은 느낌. “스틸 컷(still cuts)” 이라는 작품의 명제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표면 위에서 지층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점막(粘膜) 뿐이다. 그 모호하고 반투명한 점막들의 색층은 사람의 투박한 손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중력이 만들어낸 우연의 이미지들이다. 물론 작가는 철저한 계산과 의도 아래 형태와 프로필을 만든다. 유동적인 물감 층을 엷게 올린 캔버스를 기울여 이미지를 만드는 프로세스에는 인과성과 우연, 의도와 즉흥성이 간명하게 결합되어 있다. 물감의 양과 점성, 밀도와 투명도가 서로 다른 색층이 만드는 불안정한 윤곽들은 수면 위에 설핏설핏 비치는 색 그림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엷은 색층 속에도 시간의 두께가 있고 사방으로 끝없이 흩어지는 움직임이 있다.
사물은 얼마나 엷어지고, 세상은 얼마나 천천히 움직일 수 있는가. 그 유동적인 이미지들은 형상 이전의 형상이고 형태 너머의 형태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은 식물의 생태에서 포착되는 유기적 이미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식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모으다 보면, 어느 듯 손 끝에서 실체가 사라지고, 미묘하게 전달되는 알 수 없는 느낌들. 감지될 수 없는 미세한 부피와 끝없이 모습을 바꾸는 진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형태들도 명료한 감각으로 감지할 수 없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진화하는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들이다. 작가의 작품들은 반투명하고 불안정하기에 더 촉각적으로 다가온다. 아주 천천히 떠 올랐다가 이내 바탕으로 사라질 것 같은 잠정적인 느낌 때문에 그 잔상이 더 오래 남는다. 사물의 명료함을 완강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세계의 모호함에 대한 채워질 수 없는 갈망에 불과한 것이다. 어쩌면 세상의 근원은 조금씩 미묘하게 움직이는 반투명한 껍질들의 무한한 지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어디로 움직일 지, 움직임이 끝나면 무엇이 남겨질 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우리 삶이 그런 것처럼”

 

Art in Cuture 12월호 2003
이동석-부산시립미술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