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ark Jong-kyu
 
Lee Sea-hyun
 2019. 4. 8 - 2019. 5. 4

붉은 산수 Red Sansu


'당신의 고향은 언제입니까?' 고향이 어디냐고 해야 말이 되는데, 언제라니. 서술어에 들어가는 ‘어디’를 ‘언제’로 바꿔치기했다. 뭔가 하니까,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선생이 썼던 칼럼 제목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은 있지만, 그 장소 대부분은 예전 그대로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지명만 뺀 나머지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경우도 많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실향민이다. 사람들은 시간과 장소를 온전히 품은 고향의 기억을 버리지 못한다. 지금 여기의 삶이 힘들고 번잡할수록 고향을 불러내는 빈도는 잦아진다. 화가 이세현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펼쳐내는 산수화의 큰 틀은 경상남도 거제와 통영 앞바다와 섬들이다. 그곳에 엮인 인문지리학은 바꾸어 서술할 내용들이 많겠지만 자연지리학으로 그려낼 얼개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고향의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기억 형상화 과정은 학창시절과 군 시절을 거쳐 유학을 마친 성년기까지 계속 이루어져 왔다.

여기서 작가가 그리는 고향의 이미지가 특별한 점 하나. 여느 화가들이 그리는 고향은 아련한 목가풍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삼는데, 이세현의 그림은 그렇게 편하지 않다. 일단 시뻘건 산수화에 섬뜩한 이미지가 군데군데 박힌 그림을 감상자들이 편하게 볼 리가 없다. 동시대 미술이라서, 불편해서 좋은 거란 말은 아니다. 옛 그림은 그것대로, 이세현의 그림은 이것대로 다 좋다. 나는 그렇다. 그렇긴 하지만 힘든 현실에 대비되는 추억 속 이상향을 표현한 음악들, 예컨대 구스타브 말러(G. Mahler) 교향곡 5번과 옛 민요 <대니 보이 Danny Boy>가 각각 존중과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지만, 그렇다고 같은 예술적 위계에 있다고 볼 수는 없지 않나. 이세현의 회화는 한국 미술계에서 2010년대 이후부터 분명한 자기 위치를 잡았다.

수많은 작가론이 존재하지만, 이세현 작가에 관한 텍스트만큼 필자들이 장소시간성을 일관되고 반복해서 쓴 경우도 나는 좀처럼 못 봤다. 아마도 작가 본인의 셀프 디스크립션에서 출발했을 그 내용은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이 다르게 쓸려고 해도 워낙 뚜렷한 생애사적 계기를 담고 있어서 큰 변칙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당연히 생략할 수도 없는 발언이다. 위에서 밝힌 것처럼, 작가는 거제도에서 태어나서 통영을 오가며 유년기를 보냈다. 그에게 일종의 원형으로 남았을 거라고 추측되는 바다와 섬들의 이미지가 그림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부산으로 고교유학을 갔으며,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면서 그의 출향기는 시작되었다. 회화를 전공한 그의 대학 시절은 1980년대였다. 한국의 현대사는 한 개인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현실에 관한 인식이 작품의 내용을 이끌었다면, 형식을 규정한 건 그 다음에 다가온 상황이었다.

그가 군 생활을 보낸 곳은 휴전선 앞에서 경계근무를 서야 하는 전방 부대였다고 한다. 여기서 작가는 캄캄한 밤의 전선을 살펴보는 적외선 투시경을 들여다 봐야했고, 그 기기가 제공한 이미지는 곧 붉은 풍경으로 화폭에 옮겨졌다. 말이 쉬워서 하는 거지만, 그가 보병이 아니라 나처럼 전차승무원이었더라면 그의 작품은 열영상 조준경를 통해서 녹색 그림으로 남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그가 학교 졸업 이후 보장된 평탄한 삶 대신 택한 영국 유학은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런던에 있는 첼시 칼리지 오브 아츠를 학교 구경도 못해본 나로서는 그게 작가 이세현이 완성태의 작가로 도달하는데 어떤 동기를 줬는지 모른다. 그 시기에 영국의 일반 학제적 분위기에 관해선 나도 좀 안다. 예술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일궈낸 이론을 독창적으로 사유하고 표현한다. 그 당시에 이미 탈근대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폐기가 공공연히 이뤄졌고, 성찰적 근대화 패러다임조차 그것의 대안이 되기에 마땅치 못한 사회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던 영국의 미술은 미술시장 그리고 유명작가들의 등장으로 한껏 고무되어 미술인들에게 새로운 개념의 예술가상을 세우게끔 했다. 이런 미술계의 자긍심은 예술과 문예사상의 무용론이라는 냉소와 불안이 이미 퍼졌고, 결국 브렉시트로 어두워진 지금의 영국에 대한 우려가 나오던 사회학의 전망과는 다른 것이었다.

같은 시대에 첨단의 예술을 습득한 그가 2009년 귀국 이후에 목격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아직 덜 완성된 한국의 근대화 기획이었다. 달리 보면, 민주화, 산업화에 뒤이은 정보화, 전문화, 세속화 같은 근대화의 여러 세부 과정을 형식적으로 이룬 남한 사회는 그 모더나이제이션을 뒤늦게 시작한 탓에 조급증을 내어 압축근대화를 성취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여러 가지 사건으로 터져 나왔으며, 작가는 이에 관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관찰했다. 이즈음부터 그가 보여준 예술적 면모는 눈부신 것이었다. 어떻게 철없던 어린 시절부터 풋내기 학창시절, 징집되어 간 군대 등을 거치며 접한 세계의 형상이 이 같은 디오라마로 구성될 수 있었을까. 이 전시가 그에게는 지난 일 년에 걸쳐 도달한 작품 목록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어쩌면 이 회화 작품들은 작가 이세현이 지금까지 성취한 바와는 별도의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신의 그림 속에 묘사된 풀 한 포기, 사람 한 명을 또렷한 색과 필체로 나타내며 쏟는 공동체에 관한 애정이다. 이와 같은 사랑이야말로 계량적으로 가늠이 어려운 관념이지만, 그는 이를 자신이 투여하는 최대치의 집중력과 인내력으로 기어이 확증된 사실로 우리 눈앞에 드러낸다. 그의 작업은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또 다른 사건이다.

(윤규홍, Art Director/예술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