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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 그린 ‘붉은 산수’ 유럽서 먼저 인정
  글쓴이 : 분도예술     날짜 : 19-04-11 16:29     조회 : 197     트랙백 주소
갤러리 분도, 이세현 작가 개인전

마흔에 英유학…졸업전 완판 기록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조화된 풍경


이세현 작가가 자신의 붉은 산수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이 마흔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까지 한국에서 그림 한점 팔린 적이 없는 무명화가였다. 경기 성남의 계원예술고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활을 했다. “작가인지 선생인지 헷갈렸죠.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대학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전세금을 들고 영국으로 날아갔다. “한번도 그림만 그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림을 포기하기에는 아까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고 정 안되면 포기하자는 심정이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1년반 정도 어학연수를 하고 첼시 칼리지에 들어갔다.

첼시 칼리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한국에서 한 현대미술 작업을 말했는데, 그건 그들의 예술어법이지, 나의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내 그림이 꼭 짝퉁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 창피했습니다.” 서구의 예술을 무작위로 받아들이고 막연히 따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국인으로서 어떤 예술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서양과 한국이 뭐가 다른지를 생각했고, ‘자연’에 주목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어릴 때 본 거제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떠올랐고, 개발로 너무 빨리 바뀌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한국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자연을 그리자.’ 이세현 작가(53)의 ‘붉은 산수’가 나온 배경이다. 현재 작가의 개인전이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고 있다.

‘붉은 산수’는 한국인으로서 현대미술을 하는 게 뭔지라는 고민에서 시작됐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풍경이다. 군 시절 최전방에서 근무한 작가는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본 자연이 생각났다. 27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인 통영의 한 마을도 뇌리를 스쳤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고향 마을에 뿌렸는데, 신거제대교 건설로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한국의 유토피아 같은 풍경이 어머니의 유해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디스토피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녹색으로 풍경을 그렸다. 군대에서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본 세상이 녹색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그려놓고 보니 아름답기만 해서 녹색을 포기했다. 녹색 대신 붉은 색을 선택했는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섞인 이미지의 느낌과 딱 맞아 떨어졌다. 아름답지만 서늘했다. 이미지는 한국의 자연이었고, 겸재 정선의 산수화를 ‘참고’했다. 정선의 산수화는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서양의 산수화처럼 한곳에서만 보고 그린 풍경화가 아니다.

작가의 그림을 보고 첼시 동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 그리지 않은 그림이 팔리기도 했다. “첼시 칼리지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한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작가 생활을 하면서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나중에 친구가 ‘그 아줌마는 스위스 취리히 버거 컬렉션 대표다. 너 로또 맞았다’고 말해줬습니다.” 작가는 작업에 확신을 갖고 ‘붉은 산수’에 몰두했고, 첼시 칼리지 졸업 전시에서 작품을 모조리 파는 기염을 토했다.

유럽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작가는 이제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붉은 산수’에 들어가는 이미지도 진화했다. 유학 당시에는 오로지 풍경만 그렸지만, 이제는 구름 등 다른 요소들이 들어가 있다. 작가는 “여행하듯이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란색으로만 그리는 ‘파란 산수’도 있다. 5월4일까지. (053)426-5615

글·사진 영남일보 조진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