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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찢고 두드렸다, 같은 듯 달라졌다… 갤러리분도, 이지현 ‘동상이몽’전
  글쓴이 : 분도예술     날짜 : 18-07-09 16:29     조회 : 113     트랙백 주소
망치로 훼손시킨 책과 드레스
본래 의도 지우고 의미 재가공


이지현 전시작


이지현 작가


이지현 작 '책 뜯다'

1층 공간이 드레스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여성의 로망인 드레스가 전시장 곳곳에 배치됐다. 색채와 디자인이 화려함의 극치였다. 실용성에 예술적 미감까지 더한, 옷이라기보다 작품인 드레스 앞에서 황홀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살포시 다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드레스 표면이 상처투성이였다. 상처난 표면에 보풀이 몽실거렸다. 이른바 ‘훼손의 아름다움’이다. 작가 이지현 작품이다.

그가 “드레스 표면을 망치로 두드렸다”고 했다. “드레스를 장식했던 장신구를 제거하고 망치로 두드려 해체하고, 다시 장신구를 달아 전혀 다른 드레스로 재생했어요.” 종합하면 해체와 재생이다.

현대미술가 이지현(사진) 초대전 ‘동상이몽’전이 갤러리 분도에서 17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는 작가의 전매특허인 해체와 재생의 대표작들로 구성됐다. 1층은 옷 작품, 2층은 도서관 책장 일부를 옮겨놓은 듯 한 컨셉의 책 작품, 3층은 전형적인 책 작업을 설치했다.

“기존의 재료와 기법은 그대로 가져가되, 새로운 요소를 살짝 얹어 변화된 세계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옷이나 책이나 기본 형태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표면만 두드리고 찢을 뿐이다. 무엇을 해체라고 했을까? 바로 책 속 글자. 두드리고 찢는 과정이 더해지면서 글자가 해체된다. 옷 또한 망치질로 물성만 남고 옷 주인의 과거 스토리는 지워진다. 작가가 “단순하지 않다”고 했다. 본래의 의미는 해체되지만 작가의 의도로 새롭게 재생된다는 속내였다.

“누군가가 입었던 옷이나 제주 해녀의 옷과 아버지의 서재나 헌책방에서 구한 인문학 서적을 활용해요. 재료 자체에 의미가 충분하죠. 그것의 해체 과정을 통해 지워내지만, 작업 하는 과정에 저의 감성이 담기게 되니 재생도 있죠.”

이번 전시는 의도적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책의 해방이다. 책꽂이에, 또는 벽에 꽃혀있거나 가지런하게 펼쳐지게 설치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드라마틱해 졌다. 움켜잡은 형태나 바람에 흩날리는 상태 등의 운동성 또는 역동성을 가미한 것. 책 속 글씨의 일부를 살린 것도 새로운 변화다.

작가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다. 그는 “순애보를 다룬 책을 두드리면서 가슴이 설렜다. 내용을 버리기에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글씨를 살렸다. 형태도 자유롭게 구사했다”고 했다. “초심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귀띔했다.

“작업 초기에는 작업 대상과의 교감이 중요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목적지향으로 변한 것 같아요. 이번 작업에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의식을 잡아끄는 것은 드레스 작품. 박동준 갤러리 분도 대표가 디자이너 박동준으로 이름을 날릴 시절 만든 드레스들이다. 박 대표가 디자이너로 은퇴하고 마지막으로 보관하던 드레스다. 디자이너 박동준의 철학과 미의식이 묻어있는 드레스를 이지현이 망치로 두드린 것이다.

누군가가 디자인해 만든 드레스에 해체 과정이 더해지면서 의외성을 발견했다. 단순하게 여겼던 드레스에 수많은 공정과 품이 들어간 것이 보였던 것. 박 대표의 옷에 대한 철학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박 대표의 몇 벌 남지 않은 드레스를 제게 주셨어요. 작업을 하면서 박 대표는 입히기 위해 옷을 지었고, 저는 입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해체를 했죠. 묘했어요. 옷을 통해 박 대표와 긴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죠.” 전시는 9일까지. 053-426-5615

대구신문
황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