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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러리 분도 새해 첫 기획전 : 작가는 많아도 ‘좋은 작가’ 만나기는 어려운 미술계…좋은 작가 9명 모아 ‘求人전’
  글쓴이 : 분도예술     날짜 : 15-02-07 17:22     조회 : 4201     트랙백 주소


갤러리분도가 을미년 새해 첫 기획전으로 마련한 ‘구인전’이 24일(화)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하용주, 정용국, 장재철, 이강원, 오상택, 로와정(노윤희`정현석 부부), 노충현, 강석호 등 9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따라서 ‘9인전’으로 오해를 하기 쉽다. 하지만 전시 부제는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求人)이다. ‘구인’이라는 말을 풀어보면 좋은 작가를 찾는다는 뜻이다. 작가는 많지만 좋은 작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는 미술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2015년을 여는 첫 전시로 ‘구인전’을 기획한 배경에는 박동준 갤러리분도 대표의 운영철학이 있다. 갤러리분도는 상업화랑이지만 지나친 상업주의를 경계한다. 오히려 상업적 흥행보다 예술성을 우선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화랑으로 미술 발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초대된 작가들은 갤러리분도가 작품성과 시장성, 품성 등을 두루 고려해 엄선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노충현 작가는 대도시의 거대한 경관 속에 덩그렇게 놓인 장소에 주목한다. 번잡한 대도시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일 작품은 눈 덮인 유수지의 겨울 풍경이다. 작가는 북적이는 대도시에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는 유수지의 겨울 풍경을 아련하고 아늑하게 담아냈다. 이는 답답한 도심에서 숨 쉴 곳을 찾는 현대 도시인의 갈망을 꿈결처럼 펼쳐보인 것 같다.

이강원 작가의 조각은 단색화에서 흔히 엿볼 수 있는 요소를 머금고 있다. 단색 추상화를 몽글몽글하게 뭉쳐 반복적으로 배치한 것 같은 작품은 간결하고 사색적이다. 세포 분열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은 단순한 형태의 조합을 현대미술의 이름으로 과감하게 표현한 사례로 평가받는 동시에 유기체가 지닌 무한 증식 욕구를 은유하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고 있다.

장재철 작가는 서양화가이지만 요즘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는 조각처럼 캔버스를 변형시킨 뒤 그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하면서 평면 페인팅과 작별을 고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기 위해 서양화가라면 으레 하는 평면 페인팅 작업을 과감하게 벗어 던졌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평면에서 못 다 표현한 자신의 심미성과 논리성을 우아하게 펼쳐보인 작품을 선보인다.

하용주 작가는 회화의 새로운 표현 양식을 탐구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는 드러내려는 부분과 애써 감추려는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 신표현주의적 경향을 띤 그의 그림에 구상성과 추상성이 공존하는 이유다.

사진작가 오상택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는 붓으로 그린 것 같은 회화 느낌의 사진 작품을 통해 큰 인상을 남기고 있다. 그는 사진 속에 가상의 옷장을 만들어 실재의 옷을 결합시킨다. 원래보다 더 크게 보여지는 사진 속 옷은 현실적이면서도 어딘가 생경한 인상을 드러낸다. 그것은 사진과 마찬가지로 패션도 예술이라는 특별한 영역을 지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로와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노윤희`정현석 작가의 작업은 설치, 영상, 회화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든다. 하지만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삶에 대한 것이다. 로와정은 인간관계, 작가 자신들을 둘러싼 주변 이야기 등을 밝고 경쾌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화가 정용국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 왔다. 이번 전시에는 부단한 노력 끝에 건져 올린 목탄화 연작 ‘White Night’를 선보인다. 작가는 최소 2년 이상 목탄화 연작에 매달려 왔다. 미세하게 흘러내리는 목탄가루를 부여잡은 그림은 작가 개인의 가족애 등이 매우 절제된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강석호 작가는 일부분 또는 순간을 포착해 캔버스에 담는다. 캔버스에 구현된 일부분 또는 순간은 더 이상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가 아니다. 나머지 전체를 밀어내고 오로지 자신만을 드러냄으로써 그 자체가 전체가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드러난 것과 묻혀버린 나머지 것의 구분을 중화시켜 버리고 그 해석을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놓는다.

<매일신문> 이경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