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Bundo
 
   
  '패션 사진전' 여는 박동준 디자이너
  글쓴이 : 분도예술     날짜 : 13-03-19 14:50     조회 : 5700     트랙백 주소
'패션 사진전' 여는 박동준 디자이너
"내가 창조한 패션 예술, 사진으로 재탄생 40주년 기념 패션쇼 보러 오세요"

올해 40주년을 맞는 패션디자이너 박동준은 사진작가 오상택과 협업해 작품을 전시한다. 작가는 박 씨의 작품 가운데 골라 이를 사진으로 표현했다.

오상택 작-closet 48


오상택 작-closet 49
대구 대표 디자이너 박동준이 패션디자이너로서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패션 상품은 종종 ‘생선’에 비유된다. 싱싱한 생선만이 잘 팔리는 패션의 세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길은 박동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떨어지지 않고, 뒤처지지 않고, 또 한눈팔지 않고 40년간 디자이너의 길을 걸어오기란 쉽지 않다. 이만큼 탄탄한 이력을 갖춘 디자이너는 전국에서도 흔치 않다.
◆40주년 기념 전시회

40년 패션 인생을 돌아보는 행사로 패션쇼 대신 사진 작품 전시회를 선택했다. 파격적인 행보다. 크고 작은 패션쇼를 100회 이상 열었던 박 씨는 늘 ‘지금이 마지막 무대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이제는 조금 호흡을 가다듬고, 색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흔적을 되돌아본다. 사진작가 오상택과 협업해 자신이 창조한 패션 예술을 사진으로 재탄생시키는 전시다. 그동안 자신에 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관리해온 덕분에 작업이 가능했다. 오상택 작가가 디자이너 박동준 패션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의상들을 추려서 사진 작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자이너 박동준 40주년을 기념해 런 웨이가 아닌 갤러리에서 펼쳐진다.

“패션쇼는 에너지 소모가 무척 많은 작업이에요. 몇 달 전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그 자료를 분석, 정리한 후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죠. 보름간 야간작업을 해야 비로소 디자인이 나옵니다. 긴 호흡을 위해, 이번에는 패션쇼 대신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오상택 작가는 ‘(un)Necessaries’라는 제목으로 옷을 의식주의 한 요소로서 필수품의 정의를 뛰어넘어 현대 사회에서 옷과 패션이 가지는 여러 의미를 사진 속에 함축해 담는다. 그는 사진 속에 가상의 옷장을 만들어 실재의 옷을 결합시킨다. 원래 크기보다 10퍼센트쯤 크게 드러나는 사진 속 옷들은 현실적이면서도 어딘가 생경한 풍경으로 펼쳐진다. 그것은 사진이 그렇듯 패션도 일상 행위가 아닌 예술이라는 특별한 영역을 지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시는 25일부터 11월 7일까지 갤러리 분도에서 열린다.

이와 함께 ‘40년의 흔적들'(40's Trace)을 주제로 한 미디어아트가 박동준 패션 부티크에서 상영되고, 연극배우 박정자 씨가 단편소설 '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중 일부를 낭독하는 이벤트를 25일 오후 6시에 연다.

◆디자이너이자 갤러리스트로

그는 ‘멋이 있는 옷’을 추구한다. 입는 사람의 품위가 저절로 배어 나오는 옷을 만들기에 옷 입는 사람들이 옷을 완성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요즘처럼 옷이 흔한 세상에, 오직 제 옷만 입는 마니아들이 많이 계셔요. 이분들 덕에 힘을 얻지요.” 누군가는 수원의 헬스장에서 TV의 패션쇼 장면을 보고 대구까지 온 사람도 있다. 18 년간 서울에서 매장을 운영한 터라 그의 옷을 그리워하는 고객들이 대구를 찾아온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는 오로지 옷만 생각해왔다. 22살 때 디자이너가 된 후 13년간은 휴일도 없이 늘 문을 열고 일했다. “몸이 정말 아플 때도 작업장에 가면 아무 생각 없이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죠. 그러다가 탈진할 정도였어요.”

1972년 입문해 1990년대 중반까지 오로지 일만 했다. 그 당시엔 문만 열면 손님들이 줄을 섰다. 그는 일찍이 패션이라는 무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깨달았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는 프로 정신을 젊은 시절에 배웠다.

이렇게 일에 몰두하던 그는 2000년대 중반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그 덕분에 지금은 일에만 매진하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잘나가던 백화점 매장을 철수하고, 숍 한 개만 운영하고 있다.

그는 30년 이상 옷을 만들어보니 비로소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40년이 되니 옷에 대한 느낌이 온다.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싶을 만큼 열심히 해야 남들이 ‘좀 괜찮다’는 평가를 해준다. 그만큼 냉혹한 곳이다. 한길만 매진하는 패션에도 끝이 없다.

“지금은 패션 환경이 나빠요. 인건비는 나날이 상승하고, 세계 각종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죠. 후배들이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그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어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그것이 틈새 전략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역시 초창기 실패를 거듭하다가 박스 스타일의 큼직한 디자인이 유행하면서 그의 스타일과 맞아떨어졌다.

2004년 그는 건물 P&B아트센터를 지었다. 패션숍, 갤러리, 도서관, 소극장, 레스토랑이 한 건물에 있는 것은 서울은 물론 외국에서도 흔치 않은 문화공간이다. 그는 2005년 새롭게 미술계에 발을 담그고 갤러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가 가장 어려운 직업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어려운 게 갤러리스트라는 걸 알게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옷은 어쨌건 세일해서라도 팔 수 있지만 그림은 마지막까지 작가의 품위를 지켜줘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쉽지 않다.

그는 광의의 미술 개념 속에 패션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한 해 10여 차례의 크고 작은 기획 전시를 연다. 특히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키워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함께 사는 삶

그래도 박동준은 디자이너로서 좋은 시절을 만나 주변에서 많은 것을 받았다. 어느 날 친구를 따라 봉사에 입문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는 사회 활동을 유난히 많이 하는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현재 맡고 있는 직함은 16개. 대구경북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 및 전국 공동대표, 이상화 기념사업회 부회장,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이사, 대구 국제패션페어 추진위원장, 대구아트페어 운영위원장, 신명여고 총동창회 부회장 등. 패션분야, 봉사, 문화 관련 크고 작은 일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직함이 많지만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김선자, 이규례 등 최근 몇 년 새 함께 활동하던 디자이너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 디자이너들이 못다 한 것까지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의 짐을 안고 있다. ‘가치 있는 삶이 어떤 삶인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래서 지금도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인생이 편하게만 살기에는 너무 짧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는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요즘 환경친화적 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가요. 재활용을 통한 디자인을 하는 거죠. 뉴욕현대미술관 등에는 재활용한 의류를 작품화한 제품이 고가에 팔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해요. 8년간 미술품 전시를 하며 얻은 영감과 디자이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환경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요.”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40년 베테랑 패션 디자이너의 꿈은 늘 새롭다.

매일신문 최세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