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용, In my memor (Pak Dongjun), Mixed media, 32.5x51cm, 2022.
사물의 내력으로 떠올리는 그 사람
갤러리분도 Homage to 박동준 ‘이진용-IN MY MEMORY’
· 일정: 10월 17일(월)~11월 12일(토)
· 장소: 갤러리분도
· 문의: 053)426-5615
사물은 누군가를 기억나게 한다. 특히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기물에는 그것과 함께 보낸 어떤 한 사람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는다. 누군가가 소중히 여기는 소지품은 그 사람의 성품과 가치관을 드러내고, 망자의 집에 있는 기물들은 그 사람이 살아간 생의 뒷모습을 나지막이 속삭이는 것처럼.
작가 이진용은 이처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오래된 사물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희귀한 고서(古書)를 비롯해 빈티지 시계, 완구류, 다기, 화석과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골동품들을 수집했다. 작가는 이를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한 회화 시리즈나 실제 수집품과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다듬은 조각, 수백에서 수천여 점의 오브제를 가공해 배열한 설치 작품 등으로 다양하게 연출해 시간의 축적을 표현한다. 마치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작업에 대해 그는 ‘일종의 타임캡슐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의 삶과 문화를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달해 인류의 기억으로 남기려는 시도이자, 대상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달 자신의 기억 속에 각인된 한 사람을 형상화하는 특별한 전시를 연다. (사)박동준기념사업회가 박동준 선생의 유지를 이어가고자 펼치는 연중 기획전 ‘오마주 투 박동준’ 시리즈의 세 번째 전시를 통해서다.
이진용 작가는 갤러리분도를 운영한 디자이너 고(故) 박동준 선생과 특별하고도 오랜 인연을 맺었다. 2012년 갤러리분도에서 연 개인전 ‘쓸모 있는 과거’를 통해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전시를 했고, 박동준 선생의 생전 마지막 전시였던 ‘메타 콜렉션’에 이르기까지 그와 꾸준히 교류하며 삶과 예술을 깊이있게 나눴다.
‘IN MY MEMORY’로 이름한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박동준 선생이 남긴 유품을 모아 틀 속에 넣고, 정밀히 가공한 레진(화학 수지) 연작으로 고인을 추억한다. 고인이 생전 지니고 다녔던 묵주와 여러 장의 사진, 여권, 스케치, 옷감이 꽂힌 핀셋 등 고인의 삶을 추억할 만한 기물에 흐르는 시간을 멈추고, 이를 박제한 10여 점의 작품이 걸린다. 은은하고 아련한 색으로 굳혀진 고인의 유품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디자이너의 화려한 모습부터 치열했던 작업 시간, 예술을 사랑했던 면모, 그리고 여인으로서의 일상적인 모습과 내면에 요동쳤던 고뇌까지 그가 살아생전 보여주고 감추었던 삶의 순간순간이 그득하다.
가까운 존재와 이별했을 때 우리는 대개 그가 남긴 소품을 태우거나 버리면서 그 존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잊어간다. 작가 이진용은 천 년이 지나도 그대로 남는 레진 박스 안에 누군가의 짧았던 생애를 넣었다. 많은 것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고인의 삶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남겨두려고.
월간 대구문화
글|김보람
이진용. IN MY MEMORY, 42×49.5cm, Mixed media, 2022 ⓒ갤러리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