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용 레진몰탈로 개념화되지 않은 색의 비경(秘境)을 탐구하는 최상흠 작가의 개인전 ‘물감(物監)을 풀다’가 갤러리 분도에서 열리고 있다.
그의 작품은 재료와 작업 방식부터 예사롭지 않다. 물감과 붓, 캔버스를 다루지 않는다. 그는 건물 바닥 마감재로 사용하는 레진 몰탈에 아크릴 물감과 경화제를 섞어 비색(翡色)의 물감을 제조한다. 이를 캔버스 천을 씌운 패널에 붓고 굳히는 작업을 20~30회 반복한다. 레진몰탈 물감이 쌓이고 두툼해지며 색이 영롱해지는 모든 과정에 작가의 눈길과 생각이 닿아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전작(前作)들보다 변화가 뚜렷하다. 레진 몰탈을 불투명하게 사용한 전작과 달리, 레진 몰탈을 투명하게 사용해 어항 속처럼 작품 내부가 보인다. 또한 나무 패널 대신 투명 아크릴로 제작한 틀을 사용했다.
변화는 또 있다. 전통적인 채색기법인 배채법(背彩法)을 응용해, 아크릴 틀을 뒤집어서 안쪽과 틀의 가장자리 틈에도 레진몰탈을 채웠다. 고려불화나 조선시대 초상화 제작에서 사용한 배채법은 비단이나 종이 뒷면에 채색을 해서 은은한 느낌이 앞면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기법이다. 그 결과 정면과 안쪽 면, 틈새의 색상에 차이가 생기는 데, 그 미세한 차이가 작품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이 같은 변화로 인해 이번 작품은 볼거리가 더욱 많아졌다. 레진 몰탈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만든, 아크릴 틀 내부에 설치한 격자 무늬의 뼈대는 의도하지 않은 기하학적 조형미를 더했다. 이와 함께 빛의 투과율이 높아져 밝아진 색감, 틈새의 색상으로 빛이 투과하며 연출되는 미묘한 색상 차이도 눈에 띈다.
뿐만 아니다. 갓 출시한 대형 평면TV의 화면 같은 작품은 오묘한 색상과 손자국 하나 없는 매끄러운 질감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작품의 측면에서 발견된다. 매끈한 정면과 달리 레진 몰탈이 겹쳐진 자국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측면은 정면의 매끈함이 수많은 작업의 결실임을 알려주며 전체 감상의 묘미를 북돋우는 역할을 한다.
정수진 갤러리 분도 큐레이터는 “대부분의 작가는 작품의 가시권역인 정면의 완성도에만 신경 쓰지, 액자에 끼우면 가려지는 측면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최상흠 작가는 이 측면에 가해진 부정적인 요소를 가감 없이 노출해 작품을 활성화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레진몰탈을 입힐 때, 그것이 빛과 만나서 잉태하는 경이로운 발색 효과까지도 십분 고려한다. 세상에 없던 빛깔을 찾아서 색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다. 레진몰탈의 세계는, 개념적인 전작들도 마찬가지지만 작가가 예술계의 일원으로서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과제를 풀어가는 화두 같은 작업이다. 그는 채탄장의 광부처럼 레진몰탈의 생리에 귀 기울이며 색의 진경을 채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