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1세대 패션디자이너이자 갤러리스트로 활약한 故 박동준 선생이 예술가들과 맺은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는 (사)박동준기념사업회의 기획전이다. 올해는 회화, 사진, 설치 등 매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나아가 영화, 소설까지 내놓은 유현미 작가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유현미는 할 수 있는 모든 장르를 섭렵하고 이를 융합해 예술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 받는다. 최근 작가는 그림보다 소설을 먼저 쓴다. 그 소설을 기반으로 한 사진은 내러티브가 가득하다. 이는 다분히 초현실적인 모습인데, 이것은 사진 이전에 설치의 형태였으며, 이 화면을 구사하는 데에는 작가의 퍼포먼스라는 요소가 가미됐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사진으로 변한 소설을 캔버스에 붙인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니까 최종 결과물은 회화와 사진의 그 경계에 있으나, 이것은 사실 문학과 퍼포먼스, 설치와 사진 그리고 회화를 겹겹이 쌓아 올린 중층적인 총체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2년 출간한 자작 소설인 『적』을 위와 같은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한다. 소설은 자기복제를 피하려는 작가 자신의 강박을 한 무명작가의 이야기에 빗댄 내용이며 이를 실제와 가상을 섞어 돌과 천, 액자 따위가 공중에 떠 부유하는 듯한 초현실적인 화면으로 완성해 불완전한 인식 체계를 파고든다. 2층에서는 무려 26년 동안 지속해 온 대표작 ‘퍼즐’의 최신 버전을 공개한다. ‘퍼즐’ 연작은 ‘아무 그림도 없는 흰색 퍼즐을 맞춰나간다’라는 독특한 상상으로 시작됐다. 마치 퍼즐의 뒷면을 연상시키는 작업을 통해 그는 인식의 뒷면, 즉 잠재된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한다.